주제는 나중에 드러난다
내게 없는 건 주제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더 자주 쓰고 싶다고 마음먹을 때마다 같은 벽에 부딪혔다. 뭘 써야 하지?
진짜 문제는 내게 아직 주제가 없다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한 대상도 없고, 또렷한 주장도 없고, 내가 안정적으로 설 수 있는 입장도 없다고 여겼다. 그런 것 없이 쓰는 글은 전부 너무 이른 것 같았다. 그저 페이지를 소음으로 채우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명확해지기를 기다렸다. 그걸 생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그저 미루기였다.
돌이켜보면 그 가정은 내가 알았던 것보다 더 강하게 나를 막고 있었다. 나는 주제란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찾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많은 경우, 주제는 충분히 써놓고 나서야 보인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돌아봤을 때, 내가 계속 되풀이해 돌아가던 자리가 보이는 것이다.
거의 무엇이든 시작이 될 수 있다
지금 내가 믿게 된 것은, 첫 기록이 대단해 보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일기여도 된다. 지하철에서 마음에 걸렸던 일을 한 줄 적어도 된다. 읽은 문장에 대한 짧은 반응이어도 되고, 그냥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이 생각으로 돌아온다"라고 적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떤 글쓰기는 전달을 위해 존재한다. 이미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남은 일은 그것을 잘 말하는 것뿐일 때가 있다.
하지만 많은 글쓰기는 그보다 훨씬 앞선 곳에서 시작된다. 우선은 자기 자신의 주의와 연결을 끊지 않기 위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무언가를 적어두는 이유는 그것이 내 안에 남았기 때문이다. 나를 조금 찔렀기 때문이다. 아직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진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 적지 않으면 하루의 흐릿함 속으로 다시 녹아 사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글은 다듬어져 있지 않고, 대개 처음부터 주제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래도 중요하다.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흔적이 없으면 나중에 드러날 것도 없다.
주제는 되풀이되는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상한 점은, 주제가 처음부터 이름표를 달고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서로 따로 떨어진 기록처럼 보인다.
어떤 메모는 주의력에 관한 것이고, 어떤 메모는 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시간을 쓰는 것 사이의 어긋남에 관한 것이다. 또 어떤 메모는 정체성에 대한 누군가의 문장에 대한 반응이고, 또 다른 하나는 책이나 생각과 직접 관련도 없는, 유난히 버거웠던 한 주에 적은 단락일 수 있다.
그런데 몇 달 뒤에 다시 보면, 그것들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사실 같은 몇 가지 질문 주위를 다른 각도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내 경우 주제는 대개 그렇게 나타난다. 결정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패턴으로 보인다. 앉아서 "이게 이제 내 주제다"라고 정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떤 관심사들이 계속해서 나를 같은 자리로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립된 순간들을 기록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궤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궤적이 보이기 시작하면 글쓰기는 달라진다. 더는 매번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새 오래전부터 자기 자신과 이어 오던 대화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이 된다.
일기와 태그가 붙은 노트는 서로 다른 것을 보여준다
이걸 알아차리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일기다. 매일, 혹은 가능한 한 자주 쓰면 삶의 결이 남는다. 무엇이 계속 나를 짓눌렀는지. 무엇을 피하고 있었는지. 무엇이 나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들었고, 무엇이 나를 나에게서 멀어지게 했는지.
이런 기록은 정말 중요하다. 하루라는 한 덩어리 안에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 감정의 습관, 반복되는 긴장, 삶의 리듬을 드러내 준다. 지금도 나는 이것이 사람이 천천히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밖의 노트도 쓴다. 짧은 단상, 태그가 붙은 조각 메모, 읽은 것에 대한 짧은 응답, 특정한 날짜에 속하지 않는 문장들. 그런 노트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주제를 더 잘 보이게 만든다.
일기는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기록한다. 태그가 붙은 노트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것인가? 대충 붙인 태그 하나라도 이미 작은 생각의 참여다. 단순히 보관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어디에 속하는지, 무엇과 맞닿아 있는지, 언젠가 어떤 다른 노트들 옆에 놓일지를 먼저 짐작해 보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을 반드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장 하지 않는 편이 나을 때도 많다. 우선 기록만 해두고 그대로 두는 것이다. 비슷한 메모들이 몇 개 모인 다음에야 태그를 붙이는 편이 오히려 더 정직하게 패턴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태그가 흐트러지는 일도 작업의 일부다
나는 태그와 늘 깔끔한 관계를 맺어온 것은 아니다. 진지하게 태그를 써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어느 순간 비슷한 곳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아진다. 혹은 너무 적어진다. 점점 의미가 흐려지는 태그도 있고, 비슷한 것이 다섯 갈래로 쪼개지는 경우도 있다. 한동안은 유용했는데 어느 순간 완전히 죽은 것처럼 느껴지는 태그도 있다. 때로는 메모를 바라보면서 이걸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을 때도 있다.
예전의 나는 그걸 태깅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여겼다. 지금은 다르게 본다. 많은 경우 그 혼란 자체가 바로 작업이다.
어떤 태그를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면, 어쩌면 그 메모가 무엇인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일 수 있다. 태그 체계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무성해졌다면, 처음의 분류가 너무 추상적이었거나, 남의 것을 빌려온 채였거나,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이름 붙이기는 생각과 분리된 일이 아니다. 이름을 붙이는 자리에서 생각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제는 처음부터 태그를 정확히 붙여야 한다는 압박을 덜 느낀다. 먼저 쓴다. 도움이 되면 나중에 태그를 붙인다. 합치고, 이름을 바꾸고, 지우고, 다시 시작한다. 결국 사람들이 계속 돌아오는 질문은 그리 많지 않다. 주의, 정체성, 사랑, 일, 두려움, 의미, 기억. 중요한 것은 완벽한 분류 체계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중 어떤 질문이 내게 실제로 살아 있는지를 알아내는 일이다.
당신이 발견하는 건 주제만이 아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이 지점이다.
기록들 사이에서 주제가 떠오르기 시작할 때, 발견하게 되는 것은 내가 무엇에 대해 쓰고 싶은가만이 아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내가 자꾸 무엇을 주목하는지. 무엇이 계속 나를 아프게 하는지. 무엇이 계속 나를 끌어당기는지. 어떤 문장들이 몇 달씩 나를 따라다니는지. 사실은 오래전부터 풀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았던 문제가 무엇인지.
그래서 나는 기록이 단순한 저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조금씩 자기 자신에게 읽히는 존재가 되어 가는 방식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기 위해 쓴다. 때로는 그저 자기 삶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쓴다. 그런데 어떤 때는, 계획하지 않았는데도 그 흔적이 패턴이 되고, 그 패턴이 주제가 되고, 그 주제가 내가 누구인지, 또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나는 예전보다 이 과정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 어디서 시작해도 괜찮다. 붙잡히는 것을 먼저 적는다. 나중에 태그가 선명해지면 그때 붙인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다시 본다. 주제는 처음부터 정해둘 필요가 없다.
충분히 오래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면, 주제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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