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읽기: 또 하나의 도서관
예상하지 못한 일
읽은 것에 응답을 쓰기 시작한 지 몇 달 뒤,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과거의 기록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일기를 다시 읽는 느낌과는 달랐다. 일기는 대개 창피하거나 그리운 감정 둘 중 하나다. 이건 달랐다. 내가 쓴 건 일기가 아니었다. 특정 순간에 진짜 무엇을 생각했는지의 기록이었다. 다듬을 시간도 없이 적은, 날것의 반응.
그 반응들을 다시 읽을 때, 누군가를 만났다. 그 사람은 나였지만, 더 이상 완전히 같지는 않은 나였다.
멈칫하게 만든 기록
쓰기 시작한 지 약 3개월쯤, 오래된 기록을 열었다. 인용문은 철학책에서 가져온 것으로, 서사를 통해 정체성을 구축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 정말 공감했던 것이다.
몇 주 전의 내 응답은 이랬다: "이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은 이야기가 아니다. 스스로 볼 수 없는 습관의 집합이다."
읽고 나서 생각했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바보 같은 응답이어서가 아니다. 솔직했고, 사려 깊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사이 어딘가에서 내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스스로도 모르게.
그래서 두 번째 응답을 썼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습관이 기반이고, 이야기는 그 기반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야기가 없으면 습관은 그냥 패턴이다. 습관이 없으면 이야기는 그냥 허구다."
같은 인용문에 대한 두 개의 응답, 몇 주 간격으로. 어느 쪽도 완전한 진실을 담지 못했다. 하지만 함께 놓으면 하나의 사실이 보였다. 나는 변해 있었다. 극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돌아보면 보이는 것들
과거의 기록들을 계속 읽다 보니, 몇 가지 패턴이 나타났다.
가장 뚜렷한 것은 모순이었다. 1월에 쓴 것과 3월에 쓴 것이 꽤 달랐다. 첫 반응은 당혹감이었다. 나는 일관성이 없는 건가? 하지만 사실 성장이란 안에서 보면 그런 모습이다. 증거를 보기 전에는 자신이 변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다음에는 반복되는 질문들이 있었다. 전혀 다른 책들에서 같은 주제로 자꾸 돌아오고 있었다. "무엇에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할 생각은 없었는데, 기록을 보면 매번 다른 각도에서 나타났다. 분명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었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보다 더 날카로울 때도 있었다. 몇 달 전의 한 문장이, 이번 주 내내 말하려고 애쓰던 것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이미 거기에 있었다. 내 말로. 그냥 잊고 있었을 뿐.
기록이 충분히 쌓이면, 방향이 보인다. 직선은 아니다. 사고는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경향, 흐름 같은 것. 뒤돌아보고 나서야 알게 된다. 내가 묻고 있는 줄도 몰랐던 질문들을 향해 쭉 가고 있었다는 것을.
사고에 대한 사고
학습 과학에 메타인지라는 개념이 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들리지만, 경험은 매우 구체적이다. 예전의 응답을 읽고 깨닫는다. "아, 그때 이런 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구나. 막힐 수밖에 없었지."
이것이 자기 기록을 다시 읽으면서 얻는 것이다. 글쓰기는 실시간 사고다. 다시 읽기는 한 발 물러서서 사고의 패턴을 보는 것이다. 어디서 막히는지, 무엇을 피하는지, 사실은 무엇을 잘하는데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지.
일기만으로는 이걸 얻을 수 없다. 일기는 주로 사건과 감정에 관한 것이니까. 이 기록들은 아이디어에 관한 것이다. 특정 순간에 특정 생각에 대한 반응. 감정 생활의 일기라기보다, 지적 생활의 지도에 가깝다.
시도해보라
읽은 것에 대한 응답을 쓰고 있다면, 몇 주밖에 안 됐더라도, 가장 처음 쓴 기록을 다시 읽어보라.
인용문을 읽고, 자기 응답을 읽는다.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알아차린다. 여전히 같은 생각인가? 무엇이 달라졌는가? 지금이라면 무엇을 덧붙이겠는가?
떠오르는 게 있으면, 적어둔다.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메모처럼.
사실 최고의 독서 경험은 항상 새 책이 아닐 수도 있다. 예전에 자기가 쓴 것을 열어보고, 한때 진심으로 믿었던 관점을 발견하고, 어느새 그것에서 멀어져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일 수도 있다.